2009년 09월 14일
악재는 느닷없다.
남자 친구의 아버지가 심근 경색으로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퇴근길에 들었다. 9월 말에 토론토로 오셔서 우리가 산 집도 보고 수리도 해주신다고 비행기 표 알아본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한게 바로 전날이었다.
남자 친구의 갑자기 쏟아진 눈물에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로 선명히 전달되었다. 그는 자기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당황해했고 나는 놀래서 그런거라고 진정시켰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만 해도 정신없이 듣기만 했다가 내게 전화하면서 그 비보가 비로소 사실로 인식된 것이리라.
내가 당황스러웠던 것은 남자 친구의 마음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었다. 우리 아빠가 심장 수술을 받으러 응급실에 실려갔다면 어땠을까? 몇 번을 상상하려고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다. 고로 나는 그의 마음을 몰랐고 진실된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남자 친구의 아버지는 심장으로 들어가는 혈관 2개와 나오는 혈관 2개, 합쳐서 4개를 이식받는 4시간 반이 걸리는 수술을 했다고 했다. 수술 후 수혈받은 피에 대한 반응으로 열과 내출혈이 있어서 오후 5시에 깨운다던 처음의 말과는 달리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셨다. 수술은 목 바로 아래 부터 배꼽까지 평생 남을 흉터를 남겼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면 한 달은 지나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어도 힘든 일은 당연히 하실 수 없을 거다.
이민 1세대의 삶에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아픔과 애환, 언어 문제로 인해 생기는 갖가지 당함들이 있다. 그건 이민자들이면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로 가지는 일종의 통과 의례 같은 거다. 남자 친구의 아버지는 자식 다 키워놓고 인생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당신의 취미, 당신이 진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았다. 그건 바로 집을 짓는 일이다. 아버지의 집 짓는 일에 대한 열정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몇 년 전에는 손수 방 9개 짜리 집을 지어 캐나다로 이민와 처음 당신 집을 갖게 되셨다. 카이스트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던 교수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업은행의 뱅킹 프로그램을 개발한 분이 캐나다에 이민와 각종 사업에 실패하고 가게와 카페를 무수히 문을 닫고 30여년이 지나서야 찾은 잘하고 좋아하는 일, 그게 집 짓는 일인 거다.
몸으로 하는 일이 힘들다는 걸 주변에서 알면서도 말리지 못한 것은 그 일을 하는 그 얼굴에 행복과 열정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이가 디자인해서 설계도만 뽑아 놓으면 아빠가 한 달이면 새집을 만들어 놓을 거라고 흥분 가득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분. 우리가 산 집이 너무 궁금하다고 당장 달려가고 싶다던 분. 아빠가 하면 이틀이면 지붕을 다 얹을 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던 분이 하루 아침에 병원 침대에 누워계시다는 걸 나는 아직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나보다.
세상 덧없다.
못나게 살던 아들 사람 구실하게 만드느라 더널해진 나를 추스르는 사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 늙고 병드는 건 생각도 못했다. 이젠 밥도 사드리고 선물도 해드릴 수 있게 되었는데...사람의 한은 이렇게 가슴에 남아 인생길에 짐으로 끌려끌려 가나보다.
# by | 2009/09/14 15:03 | 02의 하루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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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작은할아버지는 최근에 독사에게 물려 혼수상태까지 가셨던...
쾌차하시길 빌게요 꼭나으실꺼에요!
마음이 많이 안좋으시겠어요.
하루빨리 나으셔서 건강한 모습 뵐수 있기를 저도 바라겠습니다
오늘, 기도중에 기억할께요♡
저도, 머물던 곳에서 알던 어른들(&그분의 가족들)께서 안좋으시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와서, 덜컹,하고 있어요....
토닥토닥_힘내세요
이제 많이 좋아지셨다고 하니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