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누군가가 떠나는 것은 매번 아프다.
이별...이것이 반드시 인연의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님에도.
우리 회사의 4년차 선배이자 나와 마음이 잘 맞아서 가장 친했던 린지가 고향인 캘거리로 돌아간다.
린지는 신기하게도 다른 내 친구들이 거의 그렇듯이 나보다 한 살이 적다. 나는 유독 81년생들과 친구의 인연인가보다.
린지는 내가 롤모델로 잡아놓고 대놓고 물어보고 닥치는 대로 배우는 뛰어난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들 마다 강점이 있게 마련인데 린지는 자기 관리, 디자이너로서의 사명감, 사람을 대하는 태도, 언변, organizing, 속도감있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능력 등등의 면에서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고단수다. 아마도 나보다 어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능력 발휘를 하고 있다는 점이 더 대단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린지의 옆자리에 앉게 된 건 우연이었지만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린지를 관찰하고 따라했기 때문에 나는 매우 빨리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게다가 린지는 내가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걸 눈치채고는 더없이 너그럽게, 귀찮아하지도 나를 무안하게 하지도 않게 적절히 강약을 조절해가며 내게 지식을 전달했다.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없는데도 남에게 자기만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은 얼마나 마음이 넓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나라면 못그랬을 지도 모른다고 나는 백 번도 넘게 생각했다.
내가 휴가에서 돌아와 회사에 간 바로 그 날 점심 시간에, 린지는 비밀이라면서 7월 중순에 캘거리로 돌아간다는 얘길 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돌처럼 굳은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에서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뭐라고? 다시 말해봐." 라고 해버렸다. 그녀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고 새로운 시작이며 남자 친구와, 가족과 함께 있게 되는 행복한 일임에도 나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우린 몇 달 전 부터 서로 조금씩 사적인 얘기와 비밀을 나누며 서로에 대한 호감과 신뢰를 쌓아가던 중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친한 친구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사이였다. 스웨덴으로 떠난 유일한 친구인 에밀리를 대신해 내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런...
린지가 떠나면 나는 디자이너로서 고속 성장/행진을 하게 된다. 갓 졸업해서 입사 일 년 만에 프로젝트를 온전히 혼자 힘으로 진행하게 되는 거다. 이미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끝냈고 요엘을 도와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긴 했지만 스케일이 큰 가게나 레스토랑을 나 혼자서 처음 부터 끝까지 마무리하게 되는 꿈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거다. 내가 염원하던 일이 생각 보다 빨리 현실이 되어버렸다. 린지가 떠남으로써. 나는 백만개의 바위를 지고 일어설 것이고 롤모델이었던 린지의 뒤를 밟아 이 회사가 생긴 이래 가장 빨리 성장한 디자이너가 될 것이다. 내가 겪을 스트레스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나는 결국 내 능력으로 극복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죽 그렇게 해왔으니까.
린지가 6개월 정도만 더 있으면, 그동안 잔뜩 배우고 좀 더 아는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나는 오늘도 이렇게 이기적인 겁쟁이같은 생각을 했다. 이게 나다, 49%의 doubt을 51%의 어디서 왔는지 모를 저력으로 이겨내고 결국 해내는 거.
외국에 살면 떠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진다. 그 아픔에 무뎌지는 거다. 자꾸 반복되니까 적응을 하는 셈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건 내가 경험으로 배운 사실이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그저 인연이면 남고 아니면 떠나간다.
린지와 나는 있는 동안 많이 대화하고 많이 배우고 많이 다니기로 했다.
나는 회사에서는 린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 자신과 무던히 싸울 것이고 일상에서는 그녀의 빈자리가 여름 방학 동안 토론토로 돌아온 에밀리로 하여금 메꿔질 것이다.